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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공간의 심해 속으로

기사승인 2024.03.22  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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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16일, 10대 소녀가 강남의 한 고층빌딩에서 투신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후 한 커뮤니티가 매우 뜨겁게 타올랐다. 그곳은 DC 인사이드의 우울증 갤러리였다. 사건은 해당 사이트를 이용하는 사람이 개시한 동반자살 게시물에 소녀가 동참하면서 발생하였다. 이후 경찰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해당 소녀가 같은 우울증 갤러리 회원들로부터 성 착취를 당했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실제로 다른 여학생이 같은 피의자들에게 만 16세 이하부터 성관계를 요구받았다고 진술하면서 우울증 갤러리의 실태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 글은 사회적 문제로 부상한 우울증 커뮤니티 즉, 우울계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청소년 우울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지뢰계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우울이 패션이 되다

도쿄 신주쿠 영화관 토호시네마 옆에서 많은 가출 청소년이 모여 노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이들을 토요코 키즈(トー横キッズ) 라고 부른다. 이곳 대부분의 여학생은 지뢰계 패션을 하고 있다. 지뢰녀란 숨어있지만 밟으면 터진다는 의미를 지닌 신조어로 겉으로는 문제없어 보이지만 막상 사귀어 보면 애정결핍, 정신질환 등의 문제를 안고 있는 여성을 뜻한다. 지뢰녀의 온라인 계정을 바로 지뢰계라고 한다. 토요코 키즈 여학생은 화려한 블라우스, 통굽 구두, 무채색 프릴 포인트, 인형 열쇠고리 등을 하고 있다. 남학생은 일본 유흥업에 종사하는 남성인 호스트처럼 화려한 염색, 복장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토요코 키즈는 자기 모습을 담은 영상을 틱톡과 같은 SNS에 올린다. 이곳의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하지 못하는 고등학생 미만의 어린아이들이 대다수여서 주로 범죄 행위를 통해 돈을 벌고 있으며, 2020년대에 들어 이 토요코 키즈는 각종 범죄와 얽혀 일본의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다.

지뢰계가 트위터, 틱톡을 통해 우리나라에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토요코 키즈의 문화 또한 우리나라 청소년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를 우리 주변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홍대입구역 인근 경의선 책거리이다. 경의선 책거리 근처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물품을 파는 곳이 다수 존재한다. 이 때문에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경의선 책거리 근처에 모여 토요코 키즈를 따라 하게 된 것이다. 경의선 키즈라 일컫는 이 학생들은 주로 가족관계, 사회관계, 학교관계에 있어 어려움을 겪는 가출 청소년이다. 그러나, ‘지뢰계’라는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가출을 하는 청소년도 존재한다. 이들은 SNS를 통해 친분을 쌓고 경의선 책거리에 모여 성매매 등의 범죄행위를 통해 돈을 벌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 대다수는 지뢰계와 함께 우울계를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물론, 경의선 책거리에 오는 모든 청소년이 우울계를 하는 것은 아니며, 지뢰계 패션을 하는 모든 사람이 우울계 사람인 것 또한 아니다. 경의선 책거리에는 단순히 지뢰계 패션을 취미생활로 즐기는 학생들이 모여 틱톡 영상을 찍고 귀가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지뢰계 패션은 ‘우울증을 앓는 여성’이 콘셉트이기에 우울과 허무주의에 취할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 또한 이 패션을 즐겨 찾는 사람이 청소년인 점을 고려할 때, 이들이 비판적인 수용 없이 우울증 콘셉트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디지털 속 심해

2023년, 교육부와 질병관리청이 청소년을 상대로 한 ‘학생 건강검사 표본통계’와 ‘청소년건강행태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2021년 이후 우울감, 스트레스, 외로움, 범불안장애를 겪는 학생들의 수치가 모두 증가하였다. 동시에 온라인 속 우울증 커뮤니티는 청소년의 우울함을 해결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우울계가 성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공간은 트위터, 틱톡, 카카오톡 오픈 채팅, DC 인사이드의 우울증 갤러리이다.

우울계는 본래 우울증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자신의 정신질환을 해결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청소년은 SNS상 퍼지고 있는 정보에 호기심을 느껴 판단력 없이 쓸려 들어가기도 했다. 앞서 설명한 지뢰계가 그 예시이다. 실제, 지뢰계 패션을 입문으로 우울계를 하게 된 학생들이 존재할 정도로 우울 문화가 학생들 사이에 체화되고 있다. 이렇게 청소년은 실제 우울증이 없어도 자기 파멸적인 행위를 통해 우울계, 지뢰계에서의 소속감을 느끼며 관심을 받고자 한다. 이것이 실제 정신질환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청소년 우울계는 사회적 문제로 논의가 시급하다.

 

우울계의 심해는 깊고 또 깜깜하다.

2022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온라인에서의 자살 유발 정보가 8배 가까이 증폭하였다. 이는 온라인 공간에서 위로, 치유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 자해, 자살 등이 공공연하게 발생하고 있음을 뜻한다. 실제 우울계는 서로를 비방하고 헐뜯는 경우가 허다하며 성, 자해, 자살, 불행경쟁이라는 키워드랑 얽혀 깊고 또 어둡다. 그리고 그곳에는 언제나, 청소년이 존재했다.

우울계가 운영되는 SNS 해시태그를 잘 살펴보면 #우울계와 함께 빠지지 않는 해시태그가 하나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섹계이다. 섹계는 성과 관련된 계정이다. 주로 성적인 이야기, 성적인 사진 공유 등과 더불어 조건 만남 등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바로 이 섹계는 우울계와 접점이 넓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취약한 심리상태를 지닌다. 이때 사람들은 자신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 혹은 자기 파멸적인 행위를 위해 성을 선택한다. 처음 언급했던 사건과 더불어 경의선 키즈에게도 성범죄는 다른 세계 이야기가 아니었다. 기자와 유튜버가 인터뷰한 경의선 책거리 학생에 따르면, A(18세) 양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집을 나와 성을 매매하게 되었다고 밝히며 데이트 30분에 15만 원, 성관계 한 번에 30만 원을 받으며 돈을 벌고 있음을 언급했다. 또한 B(16세) 양과 C(13세)양 또한 조건만남을 각각 3년, 1년째 지속하고 있음을 밝혔다. 우울계 안에서는 미성년자의 성을 목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다수 존재하며, 스스로 성매매를 강행하는 청소년이 존재한다. 그러한 점에서 우울계는 청소년에게 파멸의 공간이다.

자기 파멸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자살의 발판 또한 우울계에 많이 존재해 있다. 보건복지부, 한국 생명 존중 희망재단이 2022년 6월 한 달간의 자살 유발 관련 정보를 추린 결과 무려 4만 1,505건이라는 수치가 나왔다. 자해는 은밀히 이루어진다는 고정관념과 달리 온라인상에서는 이미 만연함을 알 수 있는 수치이다. 혼자라면 하지 못했던 자해와 자살이 온라인 속 누군가와 동행하게 되면서 실제 실천으로 옮기는 데 큰 힘이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실제로 우울증 커뮤니티에서 만난 여학생 두 명이 실시간 방송으로 한강에서 투신을 하려다 경찰에 의해 구조된 사건이 존재한다. 또한 경의선 책거리에서도 청소년이 자해한 사건이 발생하여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온라인 공간은 자해할 수 있는 위험 요인이 많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우선, 자해와 자살정보는 온라인 공간에서 음지화되기에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최적의 장이 된다. 게다가 청소년은 SNS를 통해 더 많은 양과 강도 높은 자기 파멸 콘텐츠를 생산한다. 이들은 ‘자해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어 공동체 및 소속감을 형성하는데, 이 동질 집단의 영향이 자해를 부추기기도 하면서 악순환이 지속되는 것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진짜 우울’과 ‘가짜 우울’로 서로를 위계 짓고, 소속감을 형성하며 불행경쟁 속에서 싸우고 있었다.

 

청소년은 우울계에 왜 취약한가?

개정되기 전 아동ㆍ청소년성보호법은 성매매를 자처한 청소년을 피해아동ㆍ청소년이 아닌 대상아동ㆍ청소년으로 분류하여 소년법에 따른 보호처분을 받게 했다. 이 때문에 청소년이 피해 사실을 신고하지 못하거나, 성 매수자가 이를 협박 수단으로 활용하는 일이 많았다. 2020년 5월 개정된 아동ㆍ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은 성매매 아동ㆍ청소년을 범법자가 아닌 보호 대상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현재 아동ㆍ청소년성보호법은 성매매 광고에 관한 아동ㆍ청소년 법적 처벌 여부를 별도로 명시하고 있지 않다. 성매매처벌법 제20조, ‘성매매 광고 행위에 따른 처벌’이 아동ㆍ청소년성보호법에는 규정되어 있지 않아서 청소년이 어떤 수사 담당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도, 받지 않을 수도 있다. 아동ㆍ청소년성보호법이 개정되었음에도 성을 매매한 청소년을 범법자로 바라보는 시각은 바뀌고 있지 않아 경찰이 관행적으로 성매매 아동ㆍ청소년을 피의자로 조사 하는 사례들 또한 발생하고 있다. 성을 매수한 가해자에 대한 형량이 높은 것도 아니다. 실제 우울계 청소년 여학생을 꾀어내 집에 보내지 않고 성관계를 한 20대 가해자들에게 검찰은 1~3년의 징역을 구형했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우울계 성범죄 관련법은 청소년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지 못 하다.

자살과 자해의 문제에서도 우울계는 매우 위험하다. 청소년은 순간적인 심경에 따라 변화하거나 행동하는 경우가 많아 자살시도를 할 가능성이 높다. 청소년의 자살을 막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자살 행위는 청소년에게 모방심리를 부추겨 특정 공간에서 짧은 시간 내 연이은 자살이 발생하는 ‘수어사이드 클러스터 현상’을 발생시킨다. 서울경찰청은 2023년 4월 16일 강남구 10대 우울증 갤러리 이용자의 투신 이후, 극단적 선택 관련 신고가 4월 1~16일 일평균 대비 17~24일 신고율이 30.1% 증가하였다고 밝혔으며 이 중 청소년 관련 자살 신고는 23건이라고 언급했다.

우울계는 성매매, 자해, 자살로 이행되는 청소년의 자기 파멸의 공간이다. 지뢰계, 우울계와 관련하여, 한 정신과 의사는 청소년의 자기 파괴적 행위를 가정과 학교가 청소년에게 정서적인 안전망 역할을 충분히 해주지 못한 데서 생긴 결과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청소년이 현실 속에서 우울을 풀 수 있는 안정적인 공간이 마땅치 않아서 우울계의 음지에서 자극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울계 청소년을 위해

2023년 5월 15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통신 자문특별위원회는 경찰의 우울증 갤러리 게시판 차단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방송통신망 법상 규제, 논의가 가능한 인터넷 사이트와 달리 SNS 플랫폼은 자체적 모니터링과 특정 키워드 차단 외에는 뚜렷한 규제 방법이 없고, 수많은 게시물을 걸러내기도 역부족하다는 이유였다. 또한, 우울증 환자들이 해당 공간에서 위로받기도 하므로 우울증 갤러리를 차단하는 것은 과잉 규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울증 갤러리 자체를 차단한다면 이용자들이 다른 커뮤니티로 옮겨가는 ‘풍선효과’가 우려된다는 것도 차단 거부의 이유였다. 실제로 2014년에 한국에서 유행했던 자살사이트를 정부에서 폐쇄하자 사람들은 해외사이트로 옮겨 더 체계적으로 자살 정보를 공유하였다.

분명, 우울계 자체를 폐쇄하는 것은 과잉 규제일 수 있다. 또한 우울 당사자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우울, 자살과 관련된 정보를 삭제하는 행위는 우울을 겪고 있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것이기에 옳은 방식은 아니다. 실제로 우울계 커뮤니티는 청소년의 위로와 치유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기에 커뮤니티 자체를 마냥 부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온라인에 자신의 불행을 기록하는 행위 자체가 회복을 위한 행위가 될 수 있고, 타인의 게시글을 통해 우울-자해계 활동의 부정적 결과를 인식하고 단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이들은 서로 도움을 받으며 온라인 공간을 도움 요청의 창구로 쓰기도 한다. 편안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우울계는 오히려 건강한 삶을 되찾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일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 청소년이 자리 잡고 있는 SNS상의 우울계는 청소년의 방황과 비행이 방임되고만 있다. 우리나라는 청소년의 우울감이 건강한 방식으로 표출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울계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현재 아동ㆍ청소년성보호법은 성매매처벌법의 ‘성매매 광고혐의에 따른 처벌’을 아동ㆍ청소년에 있어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지 않아 수사 담당자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수사 담당자에 따라 법을 다르게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국회는 성매매 아동ㆍ청소년을 법적 처벌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별도로 명시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학생들이 성매매 이후 다시 성을 매매할 수 없도록 하는 가이드들이 국가 차원에서 제공되어야 한다. 정부는 자해와 자살 관련 글이 올라오는 시간대에 집중적인 감시를 함으로써 순간적으로 자살을 행하는 청소년의 행태를 잘 살펴야 한다. 자해가 이루어지고 있는 우울 커뮤니티에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 등의 자세한 정보를 제공할 의무도 있다. 죽음을 암시한 글을 비롯한 다양한 데이터들을 비교, 분석하여 자살 원인을 해결해 주는 ‘찾아가는 예방법’ 또한 정부가 할 수 있는 적극적인 조치이다. 2023년 11월 16일, 여성가족부는 청소년 밀집 지역인 경의선 책거리에 ‘찾아가는 청소년 상담소’를 실시했다. 마포구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마포구 학교 밖 청소년지원센터, 마포경찰서, 서울 성 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통합 지원센터 등 여러 기관이 연합하여 청소년의 고민을 듣고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 주었다. 이처럼, 청소년의 말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공간을 그들 근처에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는 우울계 청소년이 안전하게 자신의 감정을 나누고 치유되도록 활발한 연구를 통해 해결책을 마련해야만 할 것이다.

 

최봄이 hic2450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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